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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신용창조와 버블의 시작

by 데코머니 2023.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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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창조와 버블

 

독자 여러분, 돈 문제가 생기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 생각은 아주 간단합니다. 지출이 수입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버블의 역사는 국가가 전재애을 통해 많은 부채를 떠안게 되거나, 정부의 잘못된 지도력이나 사치 등으로 발생한 재정의 손실을 갚아나가는 과정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다른 나라, 다른 시대에 과정은 달랐어도 그 결과는 항상 동일했습니다. 18세기 프랑스 역시 식민지 전쟁과 방만한 경영을 통해 국가부채가 늘어났고 이와 함께 고민도 깊어졌습니다. 이때 나타난 사람이 존 로(John Law:1671~1729)였습니다. 로는 오클레앙 공작에게 국가도 은행과 같은 방법을 써보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즉, 은행이 자산 및 예금에 대비하여 1 대 10까지 어음을 발행하는 것처럼 국가도 이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자는 식으로 말이죠. 국가가 걷는 모든 세금을 예금이라고 가정한다면 이것을 관할하는 은행은 국가가 걷는 세금의 10배에 해당하는 은행 어음을 발행할 수 있다는 기발한 방법이였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이미 동전 발행량을 늘려 돈의 가치가 20퍼센트 이상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가부채를 줄이고 재정을 늘리면서 동시에 세금을 무리해서 걷지 않아도 된다는 존 로의 제안은 유혹적이었습니다.

1716년 오클레앙 공작은 로열뱅크와 서방회사(미시시피로 더욱 많이 알려짐)의 설립 허가를 내주었습니다. 존 로는 로열뱅크와 서방회사를 통해 당시 프랑스령인 미국 루이지애나와 아시아 무역의 조세 징수 대리권 등을 독점하는 조건으로 프랑스 국채를 매입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중앙은행과 흡사하게 프랑스 국채를 매입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중앙은행과 흡사하게 프랑스 국채를 담보로 10배의 은행권을 발행하면서, 요구 시 이것을 금과 바꿔주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물론 사람들이 처음부터 미시시피 회사를 믿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존 로는 로비를 통해 국가가 로열뱅크의 은행권을 세금으로  받도록 설계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진 미시시피 버블은 18세기 프랑스의 무역 독점권을 가졌던 서방회사의 주가 급등과 폭락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이 회사 주식은 2년 동안 500리브르(프랑스 이전 화폐 단위)에서 1만8,000리브르까지 폭등했다가 투자자들이 자본 이득을 금으로 바꿔줄 것으로 요구하면서 순식간에 휴지조각이 되버린 전형적인 버블이였습니다. 이 미시시피 버블은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생긴 것도 아니고, 루이지애나의 금 매장량이 예상보다 적었다거나 미국과 아시아에 대한 무역 독점이 무너져서가 아닙니다. 그 원인은 케인스 학파의 시초라 불리는 존 로에 의해 고안된, 가히 천재적이라 불릴 만한 '지폐 시스템'에 있었습니다.

국가가 세금으로 인정한 은행권, 이것이 바로 중앙은행의 시초이자 신용창조(은행이 예금된 돈의 일부를 고객에게 대부하고 이를 다시 예금해서 원래 돈의 몇 배를 예금으로 만드는 과정)와 버블의 시작이었다. 이 세금 아이디어로 은행권은 대중에게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로열뱅크는 계속해서 프라승 국채를 매입할 수 있었으며, 이 국채를 레버리지하여 10배의 은행권을 계속 발행하는 부채 서비스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식 판매를 통해 얻은 자본으로 지속적으로 프랑스 국채를 매입하였고, 그것을 담보로 다시 은행권을 발행하였습니다. 나라의 세금을 미리 팔았던 탈리 스틱과 비슷한 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채를 지속적으로 매입하여 다시 은행권으로 발행하였고 국가가 보증하는 로열뱅크의 주식은 30배 이상 폭등했고, 버블은 모든 곳에서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은 어떤 액션을 취했을 것 같나요? 최근 업비트 사건으로 업비트 본사에 찾아갔던 많은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저도 개인적인 일이지만 그 부분에서 많이 가슴 아팠던 일도 있었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투자자들은 반발하며 이 은행권을 금으로 환전해달라고 요구했고 버블은 터지고 말았습니다. 어떤 이는 단순히 사기꾼에 불과했던 존 로를 화폐 금융의 본질을 이해한 선각자라고 칭하기도 했습니다. 창조적 혁신을 주장했던 경제학자 조지프 슘폐터조차 존 로를 '심오한 지식 체계로 경제학을 이해한 화폐 이론가' 로 평가했을 정도입니다. 돈의 공급이 부족해서 경제가 힘들어질 때 더 많은 돈을 공급하면 된다는 양적완하 이론의 개념을 최초로 도입했다고 해석될 수도 있으니까요. 존 로는 화폐의 본질이 금이나 은 등 금속의 가치나 무게가 아니라 '공공의 신뢰'에 있다고 믿었고 이를 프랑스 왕실에 인정 받으려 했습니다. 문제는 인정을 얻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이를 유지하려면 진짜 가치있는 자산을 보유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죠. 수천 년이 지나 실제 돈으로 인정받던 금이 신ㅇ용화폐로 대체된 오늘날에는 그 가치를 보증받기 위해 글로벌 중앙은행들이 금을 외환보유고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18세기의 존 로는 몰랐던 것입니다. 권리에는 책임이 따르고 신뢰에는 담보가 필요한 것을 독자 여러분께서 항상 인지하고 살아가셨으면 합니다.

시대가 많이 흐르고 변해서 현대 사회에서도 독자 여러분들께서 버블 경제 상태가 여러 나라 그리고 우리나라 까지도 버블이 일어나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오늘도 경제에 관련된 이야기를 작성해보고자 이렇게 포스팅을 해보았습니다. 언제나 독자 여러분들과 좋은 주제와 글로 함께하는 데코머니 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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