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나 온 이야기
지금까지 돈이 무엇인가에 대한 글로 독자 여러분들께 정보를 제공하였습니다. 돈은 '권력'을 가진 국가가 '세금을 걷어 갚겠다고 미래의 소득을 담보로 당겨 쓰는 '빚'이었습니다. 돈, 즉 화폐가 교환과 가치 저장 수단이 되려면 항상 그것을 대변하는 담보가 있어야 했습니다. 시계나 가방을 담보로 전당포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것처럼 특정 자산을 대리하는 돈 역시 그 속성이 담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 사회에서 금이나 은을 담보로 한 화폐의 가치는 그 금속의 무게와 같았죠. 이런 이유로 주요국의 화폐 단위들도 귀금속의 무게를 재는 단위에서 유래된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무게를 의미하는 파운드와 발음과 철자가 같은 화폐 단위 '파운드'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는 예도 존재하죠. 유로화가 등장하기 전까지 사용된 독일의 화폐 단위 '마르크'도 금과 은의 질량을 재는 무게 단위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처럼 화폐가 금이나 은의 무게에 고정되었던 이유는 모든 사람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돈은 더 이상 무게와 관련이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버블은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나 돈을 쉽게 빌릴 수 있었기 때문에 생깁니다. 프랑스의 미시시피 버블, 영국의 남해회사 버블,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 이야기 등 너무 쉽게 돈을 빌릴 수 있었던 돈이 버블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제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없는 돈을 새로운 돈으로 메우는 것은 단기적인 처방에 불과했습니다. 이를 알게 된 권력가들과 은행은 돈을 미친 듯이 늘리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인 화폐의 태환 기능(지폐를 금으로 바꾸는 기능 등)을 영원히 없애버렸습니다. 불가능한 성장의 지속을 위해 선택한 100퍼센트 신용화폐는 바로 이런 배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드디어 인류 사회에서는 눈 뜨고 찾아봐도 실물을 볼 수 없고, 무게를 달 수도 없는 추상적인 '신용'이라는 개념이 생겨났습니다. 금으로 태환될 당시의 화폐는 아무리 많은 양을 발행해도 금의 10배 수준이었고, 이마저도 사람들이 일시에 은행에 달려가서 화폐를 은행에 전부 금으로 바꿔달라 한다면 대책이 없는 상황이었죠. 그러나 미국 달러화까지, 화폐에서 금으로 바꿀 수 있는 기능을 빼고 나니 너무나 완벽한 신용화폐가 탄생한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들고 있는 화폐와 계좌 안에 있는 돈도 신용화폐일 뿐이다. 그렇지만 신용화폐 시스템은 우리를 헷갈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조폐공사가 한국은행의 지시를 받아 돈을 발행한다고 알고 있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 지갑 속에 들어 있는 종이돈은 당연히 한국은행과 조폐공사의 작품이죠.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돈이 종이돈만으로 발행될 수는 없습니다. 종이돈이라는 건 은행계좌, 증권계좌에 있는 돈들이 우리 지갑 속으로 들어오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명목화폐라는 개념). 그전까지 돈은 은행이 부리는 연금술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은행권에 있는 돈을 일시적으로 상환하라고 한다면 은행은 부도가 날 것이다]
이 아리송한 신용화폐 시스템의 비밀은 결국 모든 돈은 누군간의 빚이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은행이 신용이라는 이름 아래 어떻게 빚으로 돈을 만드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면 신용의 팽창과 축소가 무엇인지, 이로 인해 경제의 성장과 부침이 어떤 과정을 통행 주기적으로 발생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순환하는 신용의 수축과 팽창을 배우는 것이 돈의 감각을 배우는 것이며, 즉 재테크의 기술입니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기에 자연의 속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돈을 가지고 하는 재테크 역시 돈의 속성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돈의 속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해하는 것은 어떤 분야든 투자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게 해 줍니다.
신용창조 시스템 이해하기
돈의 양(통화량)은 우리의 경제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돈을 공급할 수 있는 건 한국은행과 연방준비은행 같은 각국의 중앙은행과 정부밖에 없습니다. 독자분들이 지속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체감할 정도로 느끼시는 이유도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증가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독점하고 있는 통화 공급 방법을 알면 신용창조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나아가 경제 상황을 분석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통화 공급의 정의는 무엇일까요?
통화공급: 돈이 발행되고 유통되는 과정
오래전 골드스미스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통화 공급의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금화를 만들던 골드스미스들은 도둑들로부터 금을 지킬 튼튼한 금고와 경비를 두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골드스미스에게 금을 맡기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금을 맡기고 증서를 받았습니다. 오늘날에 통장이나 예금증서를 받은 것이죠. 이 증서는 실물인 금과 동일하게 취급되었고 오히려 편리한 면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실물 금화 대신 이 예금증서가 시중에 더 많이 통용되었습니다. 골드스미스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자기에게 맡겨둔 금을 찾아서 거래대금을 지불하지 않고 예금 증서를 지급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보유한 예금 중 일부를 사람들에게 빌려주기 시작합니다. 진짜 금을 빌려준 게 아니라 예금 증서를 빌려준 것이죠. 그렇게 골드스미스는 예금주들의 돈 중 일정 부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주게 되었고, 이것이 지급 준비율제도(은행이 고객으로부터 받아들인 예금 중에서 중앙은행에 의무적으로 적립해야 하는 비율)의 시초가 되었던 것입니다. 골드스미스의 돈놀이는 본질적으로 불안한 시스템입니다. 예금주가 언제든지 금을 찾아갈 수 있는 요구불예금(예금주가 요구할 때 바로 지급되는 예금)이기 때문입니다. 예금주들이 골드스미스의 금고에 금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인출하기 시작하면 금고는 순식간에 텅텅 비워집니다.
신용창조시스템(1)을 여기까지로 마치고 신용창조시스템(2)으로 바로 돌아오도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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